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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을 연주할 때면 늘 긴장된다. 경쾌하게 시작해서 화려한 행진곡풍으로 마무리되는 3악장이 끝나면 청중이 곡이 끝난 줄 알고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지휘자는 3악장 마치고 박수가 터져 나오면 청중을 노려보며 노골적으로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럴 때는 함께 연주하는 나 자신도 민망할 정도다. 사실 끝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3악장을 듣다 보면 그 뒤에 또 음악이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작곡가가 그렇게 곡을 써서 청중의 박수가 나오게끔 했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작년 런던에서 ‘비창’을 연습하면서 우리 교향악단은 차이콥스키가 남긴 친필 악보를 참고해서 바이올린 활 쓰기를 바꿨다. 연필과 지우개를 들고 부산한 사이에 지휘자가 말을 꺼냈다.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청중에게 ‘강의’를 하겠다는 것이다. 차이콥스키는 자신이 혐오하는 것들을 과장되게 밝고 힘이 넘치는 음악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작곡가의 방점은 ‘비창’ 3악장의 활기가 아니라 4악장의 비장함에 있다는 내용으로.

다음날 지휘자는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나왔다. ‘비창’은 악이 승리하는 듯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기 때문에 3악장의 화려함에 압도돼 박수를 치면 전쟁과 폭력에 동조하고 박수를 치는 거나 다름없다고 했다. 지휘자의 설명 덕분에 3악장이 끝났을 때 홀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그리고 지휘자의 의도대로 무사히 4악장을 마쳤다. 그러나 청중을 주눅들게 한 건 역시 잘못이었다고 생각한다. 연주 전 ‘비창’ 해설은 그날 한 번으로 끝났다.
일사일언 칼럼 일러스트
하지만 연주자로서 정말 권하고 싶다. 멈출 수 없을 만큼 절박하게 달려나간 3악장이 폭발한 후 잠시 정적(靜寂)에 귀 기울여 보라고. 침묵 속에서 태어나 외로움을 절절히 호소하는 4악장 도입부를 듣는 것은 생명의 기척이라곤 없는 폐허에서 살아남은 풀 한 포기를 발견하는 것 같은 놀라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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