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_fittext text=”‘안다 박수'”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음악계 사람들 사이에는 ‘안다 박수’ 라는 말이 있다. 마지막 음이 끝나기도 전에 이 곡이 언제 끝나는지 안다고 보여주려는 듯이 터져 나오는 박수를 말한다. 곡의 악장 사이에는 박수 치는 것을 삼가 달라고 안내하는 것을 가끔 본다. 하지만 연주하다 보면 ‘안다 박수’가 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최근에 세상을 뜬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2012년 루체른 페스티벌 연주는 영상으로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진혼곡, 마지막 음이 울리고 그의 지휘봉도 멈춘다. 그는 한참 후에 두 팔을 내리고, 한 손을 가슴께에 가져간다. 벅찬 표정이다. 지쳐 보이기도 한다.

그 순간 그와 함께 연주한 모든 사람에게는 시간이 아주 느리게 느껴지고, 머릿속에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음악이 준 희열로 터질 듯한 가슴께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가져가는 사람이 객석에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방금 들은 음악의 경이로움에 사로잡혀 잠시 자기를 잊고, 시간이 멈추는 귀한 순간을 같이 나눈 것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손을 내리고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숨을 골랐다. 눈을 뜨고 먼 곳을 바라봤다가, 감았다가, 다시 한 번 눈을 뜨고 발밑을 내려다봤다. 모차르트의 진혼곡은 그렇게 멀리까지 사람을 데려간다. 소리는 나면 바로 사라지지만 그 음악을 겪은 사람이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는 고개를 숙였다. 청중은 박수로 화답했다.

청중은 연주의 일부분이다. 내 스승님은 연주는 작곡가, 연주자, 청중의 삼각관계라고 하셨다. 연주는 청중의 동참을 통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소리와 시간의 예술인 음악은 고요함에서 출발해서 마지막 소리가 공기 속으로 사라진 후에 고요함으로 되돌아간다. 시작하기 전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 그리고 마지막 소리 후에 박수로 좋았다는 표현을 하기 전에 잠깐 음악을 마무리할 시간을 갖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청중은 수동적으로 앉아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의 신비로운 여정을 연주자와 직접 함께하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