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_fittext text=”누군가를 위하여”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런던의 로열 오페라에서 하는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연습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무대에서 가까운 박스석에 몇 사람이 모여 앉았다.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잠시 지휘를 멈추고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멋있는 말이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떨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놀라서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저는 음악이나 오페라를 전혀 모르지만”이라고 운을 뗀 아주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특별해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아름다워서….”

아주머니는 몇 번이나 자신은 음악이나 오페라를 모른다고 사과하듯 말씀하셨다. 오페라에서 노래를 하는 군중 역할은 합창단이 맡지만, 노래와 상관없는 군중 엑스트라는 극장 근처의 주민 중 자원자를 쓴다고 했다. 그날은 하녀로 분장해서 검은 옷에 흰 앞치마를 둘렀다. 자기가 출연할 차례를 기다리며 객석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름은 미셸이고, 소호의 ‘메종 베르토’라는 카페에서 일한다고 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던 우리 모두 중 베르디의 음악을 가장 순수하게, 직관적으로 이해한 사람은 미셸이었는지도 모른다.

음악을 직업으로 하다 보면 음악을 즐기기만 할 수는 없다. 잘하는 연주인가 아닌가의 평가에만 관심이 쏠리고, 정작 음악이 주는 감동에 무뎌진다. 그날 나는 우리가 밥 먹듯이 하는 연주가 어떤 사람에겐 그렇게 큰 감동을 준다는 것에 두려울 정도의 책임감을 느꼈다.
일하다 보면 가혹한 연주 일정에 지치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만족스럽지 못한 연주를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우린 음표 공장의 기능공일 뿐이야” 하는 자조적인 말이 나올 때면 미셸을 떠올린다. 객석에는 이 음악을 처음 듣는 누군가가 호기심과 기대를 품고 앉아 있을 것이다. 내가 음악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감동이 그 사람의 마음에도 닿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