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3000089_1[wolf_fittext text=”내 낡은 서랍 속의 음악”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내가 다닌 베를린 예술대학에서는 엘마 붓데라는 음악학자가 음악사를 가르쳤다. 학기가 끝나면 소논문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분은 내게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써보라고 권하셨다. 동료이자 친구였는데 아주 인상적인 사람이었다면서.

한번은 윤이상이 소프라노를 위한 곡을 썼는데 그가 요구하는 높은음을 내기에 소프라노의 역량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작곡가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음으로 바꾸자, 음높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단다. 엘마 붓데는 강의 중에 그 일화를 들려주며 ‘음악에서 음의 절대적 높이나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윤이상이 자기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이었다고 추억했다.

그래서 찾아보게 된 윤이상에 대한 자료 가운데 독일 소설가 루이제 린저와 대담한 걸 기록한 ‘상처 입은 용’이라는 책이 있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작곡가의 말을 베껴 놓고 가끔 읽는다. “어느 날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가, 그저 조용히 바닷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싶습니다. 마음속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그것을 써두려고도 하지 않고 고요함에 몸을 맡기고 싶습니다.”

통영 바닷가의 한적한 구석에 앉아서 낚싯줄을 드리우고 그저 고요함 속에 머물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소리를 내는 악기라든가 음악을 기호로 표시한 악보 따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바닷가에 앉으면 수평선과 그 위에 펼쳐진 하늘이 눈에 가득 들어올 것이다. 규칙적인 듯하지만 매번 다른 파도 소리에 귀를 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노래 하나쯤 떠오르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 본다. 작곡가가 마음속으로만 듣고 악보로 옮기지 않는 음악은 어떤 것인지. 모두들 너무 미묘하거나 소중하거나 또는 아파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 하나쯤은 품고 있을 것이다. 말로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소리에 담아낸 것이 음악이다. 삶을 바쳐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 작곡가의 가슴속에는 혼자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이 깊이 묻혀 있을 법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