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_fittext text=”새벽 출국장의 오케스트라”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지난달 말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거의 매일 비행기를 탔다. 날마다 이동해서 연주하려면 전세기밖에 답이 없을 때도 있다. 어느 날 새벽에는 빈에서 출발해서 슈투트가르트 가는 비행기를 타러 갔다. 항공사 스크린에 ‘런던 필하모닉―슈투트가르트’라고 쓰인 곳을 찾아서 줄을 섰는데 바로 옆 스크린에는 ‘빈 필하모닉―파리’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도 아침 전세기를 타고 연주하러 가는 중이었다.

그쪽 줄에는 아무도 없길래 우리보다 늦게 출발하나 보다 했는데 웬걸, 출국장에 들어가 보니 게이트도 우리 바로 옆이었고 이미 수속이 다 끝나서 다들 비행기를 타려는 참이었다. 우리 플루트 수석이 마침 같은 악기 하는 동료를 만나서 얼싸안고 반가워하는 걸 보고 나도 오랫동안 못 본 친구를 찾아봤다. 둘러보니 악기를 메고 큰 가방을 들고, 아이와 통화를 하는지 전화에만 정신이 팔린 젊은 여자도 있었고, 물 한 병씩을 사 들고 전날 밤의 피곤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하품하는 중년 남자도 여럿 있었다.

빈 필은 음악 애호가 사이에선 꿈의 오케스트라로 통한다. 하지만 새벽 출국장에서 만난 빈 필 단원에게서 온 세계에 중계되는 신년 음악회의 화려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밤늦게까지 몸을 써서 일하며, 악기뿐 아니라 자기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빈 필하모닉―파리’를 봤을 때만 해도 우리도 슈투트가르트 말고 파리 가자고 실없는 소리를 했던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사는 건 다 똑같구나’ 새삼 깨달았다.

휼륭한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려면 악기를 배우는 데 오랜 세월을 바치고 피 말리는 오디션을 거치며 실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정작 어딘가에 소속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기를 버리고 전체의 하모니를 위해 큰 그림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맡은 부분에서는 매 순간 완벽해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오늘 괜찮은 베토벤 교향곡이라든가 말러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건 이렇게 음악에 삶을 바치는 그들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