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_fittext text=”악보를 못 버리는 이유”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주말에 이사를 했다. 책과 악보만 스무 상자가 넘었다. 크고 무거운 악보들을 하나하나 꺼내 상자에 넣는 노동을 몇 시간씩 반복하니 허리도 아팠다. 이걸 꼭 다 가지고 있어야 하나 하는 회의도 절로 들었다. 무거운 상자를 나르는 분들께도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이삿짐을 싸면서 보니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악보가 가득했다. 녹음을 듣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곡을 이해할 수 없어서 샀던 ‘시벨리우스 교향곡 3번’의 총보는 벌써 20년 가까이 가지고 있다. ‘엘가 교향곡 2번’은 런던에 처음 일하러 올 때 연주했는데 그전엔 들어본 적 없는 곡이라 나름대로 열심히 듣고 악보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밤낮으로 ‘목신의 오후 전주곡’이나 ‘봄의 제전’을 끼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 어느덧 그 악보들에는 음악만이 아니라 내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음악 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들은 음악을 쉽게 기억하는 편이 아니다. 소리는 나는 순간부터 사라져 가는 것이기도 하다. 악보를 한때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꼭 지금 그 곡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시간을 그 악보와 함께 보냈는데도 지금 보면 내가 연필로 표시해놓은 것조차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런던의 지휘 선생님 한 분이 수업 중에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학생 시절 도스토옙스키 소설에 심취해 밥도 굶고 책을 읽을 정도로 그 세계에 빠져 지냈는데 지금은 책의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내용을 다 잊고 나서도 무엇인가는 분명 자신에게 남아 있다면서, “어쩌면 다 잊고 나서 남은 그것이야말로 진짜가 아닐까?” 하고 되물으셨다.

지난주에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도 가물가물하다든가, 전에 연주했던 곡인데 처음 보는 것만 같은 악보를 앞에 놓고 망연(茫然)해질 때, 그 말씀으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