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_fittext text=”드뷔시 연습곡 가격은?”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토요일에 반나절 시간이 나서 집 근처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들렀다. 비교적 저렴한 판화부터 일반인이 소장할 수 있을 만한 값의 작품들까지 한자리에 모아 파는 행사였다. 아무리 값이 싸다 해도 미술 작품의 가격은 내가 선뜻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눈요기를 하고, 마음에 드는 그림 몇 점 앞에선 ‘이걸 집에 걸어 놓으면 어떨까’ 잠시 즐거운 공상을 했다. 잘 모르겠다 싶은 그림도 많았다. ‘그걸 이 값을 받고 팔다니’ 하며 잠시 구시렁거리기도 했다.

같은 날 저녁엔 한 피아니스트의 독주회에 갔다. 1부엔 상대적으로 친숙한 작곡가들, 2부엔 지난해에 쓰여서 런던에선 처음으로 연주되는 곡 하나와 20세기 초에 활동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곡을 연주했다. 1부 연주가 워낙 밀도 높고 알차서 여기까지만 들어도 충분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싼 표를 구입했기 때문에 표 값은 이미 뽑았으니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는 얘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왔다.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던 2부와 앙코르까지 다 듣고 돌아오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들었던 드뷔시 연습곡의 가격은 얼마일까. 거기에 한 곡을 더하면 그 값은? 음악회 표 값이 그림 값보다 적었으니 음악회가 더 싼 걸까? 아니면 그림은 실물이 남는 데다 되팔 수도 있지만 한 번 듣고 난 연주는 사라지고 없으니 더 비싼가.

공연이든 그림이든 예술 작품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시장 원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예술의 가치는, 아니 예술이란 꼬리표가 붙지 않더라도 어떤 것의 가치는 그것의 가격과는 분명히 다르다. 음악의 가치는 듣는 사람이 그 음악에 부여하는 만큼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몇십 분간 드뷔시 연습곡을 들었다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함께 앉아 그 음악을 들은 몇백 명의 공감(共感)과 음악에 자신을 담아낸 작곡가 드뷔시, 연주에 평생을 바치는 피아니스트, 1890년에 만들어진 뒤 오늘도 소리를 내는 피아노도 있다. 그래서 예술의 가치는 돈으로 계산하기엔 너무나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