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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내 낡은 서랍 속의 음악

[wolf_fittext text="내 낡은 서랍 속의 음악"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10 30 입력 내가 다닌 베를린 예술대학에서는 엘마 붓데라는 음악학자가 음악사를 가르쳤다. 학기가 끝나면 소논문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분은 내게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써보라고 권하셨다. 동료이자 친구였는데 아주 인상적인 사람이었다면서. 한번은 윤이상이 소프라노를 위한 곡을 썼는데 그가 요구하는 높은음을 내기에 소프라노의 역량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작곡가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음으로 바꾸자, 음높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단다. 엘마 붓데는 강의 중에 그 일화를 들려주며 '음악에서 음의 절대적 높이나 길이가 중요하지 않다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윤이상이 자기가 아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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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의 힘

[wolf_fittext text="마음가짐의 힘"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10 23 입력 여름마다,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인 글라인드본에서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연주를 한다. 작은 동네라 밥 먹을 곳이 뻔한데 이태 전에 '라임오렌지나무'라는 식당이 생겼다. 소박한 테이블 일곱개가 전부다. 놀랄 만큼 음식이 맛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색다른 맛을 낸다. 담음새도 간결하지만 아름답다. 궁금해서 누가 요리를 하느냐고 물었다. 젊은 주방장이 나왔다. 내 또래였다. 가족이 요리를 좋아해서 네 살 때부터 부엌을 드나들었고, 버밍엄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할 때 프랑스 식당에서 일하면서 기본을 배웠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생각을 갖고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요리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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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3번 버스

[wolf_fittext text="노래하는 3번 버스"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10 16 입력 우리 교향악단의 이동 수단은 여러 가지인데, 버스는 문앞에서 문앞까지 바로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자주 이용한다. 100명 남짓한 단원들이 보통 버스 석 대에 나눠 탄다. 편의상 1, 2, 3번으로 부르고 번호 순서대로 출발한다. 3호 차는 '노래 부르는 버스'로 알려져 있다. 타악기와 관악기 주자들이 주로 탄다. 물론 악기에 상관없이 탈 수 있지만 '노래 안 부르려면 우리 버스에 타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이 있다. 한번은 새로 들어온 객원 바이올린 연주자 둘이 뒤늦게 내가 탄 버스에 올라와서 앉을 자리를 찾았다. 3호 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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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만 행복한걸

[wolf_fittext text="힘들지만 행복한걸"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10 09 입력 2주째 연주여행을 다닌다. 연습하고 연주하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더 길다. 꼭두새벽에 일어난다. 악기를 메고 무거운 가방을 끌고 공항에 가서 줄을 선다. 체크인을 마치면 보안검색대에서 줄을 서고, 탑승할 때 또 줄을 선다. 내리면 입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서고, 나와서는 가방을 기다린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한다. 그나마 시간이 빠듯하면 공연장으로 바로 간다. 연주하기 전에 무대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주여행 중에는 하루 세 끼를 챙겨 먹는 것도 사치다. 저녁 늦게까지 연주하고 아침마다 짐을 싸서 이동하니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날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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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위하여

[wolf_fittext text="누군가를 위하여"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10 02 입력 런던의 로열 오페라에서 하는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 연습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무대에서 가까운 박스석에 몇 사람이 모여 앉았다. 지휘자 다니엘레 가티가 잠시 지휘를 멈추고 작품에 대한 자기 생각을 얘기했다. 멋있는 말이었다는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떨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놀라서 괜찮으시냐고 물었다. "저는 음악이나 오페라를 전혀 모르지만"이라고 운을 뗀 아주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특별해요.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아름다워서…." 아주머니는 몇 번이나 자신은 음악이나 오페라를 모른다고 사과하듯 말씀하셨다. 오페라에서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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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 박수

[wolf_fittext text="'안다 박수'"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09 25 입력 음악계 사람들 사이에는 '안다 박수' 라는 말이 있다. 마지막 음이 끝나기도 전에 이 곡이 언제 끝나는지 안다고 보여주려는 듯이 터져 나오는 박수를 말한다. 곡의 악장 사이에는 박수 치는 것을 삼가 달라고 안내하는 것을 가끔 본다. 하지만 연주하다 보면 '안다 박수'가 더 안타까울 때가 있다. 최근에 세상을 뜬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2012년 루체른 페스티벌 연주는 영상으로 남아 있다. 모차르트의 진혼곡, 마지막 음이 울리고 그의 지휘봉도 멈춘다. 그는 한참 후에 두 팔을 내리고, 한 손을 가슴께에 가져간다. 벅찬 표정이다. 지쳐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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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하는 바이올리니스트

[wolf_fittext text="권투하는 바이올리니스트"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09 18 입력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집에 살 때, 아래층에는 바이에른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가 살았다. 가끔 엘리베이터 탈 때나 자전거를 세워놓은 지하 주차장에서 마주쳤다. 어느 날, 극장에서 공연하고 나오는데 마침 주역 발레리나도 꽃다발을 안고 나오는 참이었다. 금세 얼굴을 못 알아볼 만큼 화장을 많이 했지만 아랫집 이웃이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다. 그쪽도 동시에 나를 알아봐서 멋쩍게 인사를 했다. 물론 춤을 어지간히 잘 추는 사람이었겠지만 내가 아직도 그를 기억하는 건 지하 주차장에 오토바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아니라도 꽤 덩치가 크고 거친 느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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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맺은 情

[wolf_fittext text="음악으로 맺은 情" max_font_size="25" letter_spacing="1" text_transform="uppercase"] 글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제 2바이올린 부수석 | 조선일보 일사일언 | 2014 09 11 입력 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벌써 열흘을 함께 보냈다. 오늘 저녁 서울에서의 연주가 마지막이다. 매년 일정이 달라서 자주 참여하진 못하지만 아는 얼굴이 꽤 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고향도, 사는 곳도 다르지만 동양 출신 연주자끼리는 익히 알고 지내거나, 알고 보면 친구의 친구다.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니 할 얘기가 많다.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도 물론 쓰지만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는 공용어가 필요해서 영어, 불어, 독일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디트로이트 심포니에서 온 친구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교향악단 동료들하고 래프팅을 배우러 갔단다. 래프팅은 뗏목젓기에서 유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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